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KIA 타이거즈/역사 (문단 편집) == [[유남호]], [[서정환]] 체제 == ||<-2> '''{{{#ffffff 캐치프레이즈}}}''' || || {{{#ffffff 2005년}}} || '''최강의 기아, 투혼의 타이거즈''' || || {{{#ffffff 2006년}}} || '''신화창조! 도전 2006! 최강 기아 타이거즈''' || || {{{#ffffff 2007년}}} || '''All For One! V10 Tigers!!''' || 2005년 시즌 들어서는 팀 케미스트리를 저해하던 [[박재홍(야구)|박재홍]]을 [[김건한|김희걸]]과 맞바꾸며 [[SK 와이번스]]로 보냈고, 내부 FA였던 [[심재학]]을 잔류시켰고, 2003년 시즌 후반기에 활약했던 마이클 키트 존슨을 다시 데려오는 등 의욕적으로 시즌을 맞이했다. 그리고 소소경과 이원식을 내주고 [[홍현우]]를 다시 데려오는 트레이드도 했는데, [[홍현우]] 덤으로 껴온 선수가 바로 [[이용규]]. 이 트레이드는 훗날 KIA팬들이 LG팬들에게 '''[[탈쥐효과|사랑해요 LG]]'''라고 놀리는 신호탄이 되고 말았다. 하지만 시즌 초반부터 영 좋지 못하더니 결국 5월에는 꼴찌로 추락하고 말았다. FA로 영입했던 선수들은 '''[[먹튀|죄다 실패작으로 남았고]]''', 그나마 LG에서 트레이드 된 [[이용규]]와 전년도 부진(AVG 0.260)에서 벗어난 [[이종범]]이 3할-20도루를 하며 분전했지만 붕괴된 투수진은 어찌 막을 도리가 없었다.[* 시즌 초에 유남호 감독의 구상은 리오스-김진우-존슨-강철민-최상덕 순의 선발진이었으나, 김진우가 스프링캠프에서 지나치게 체중감량에만 신경을 쓴탓에 훈련량 부족으로 1군에 오르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. 이러자 유남호 감독은 [[다니엘 리오스]]-[[존슨]]-'''[[강철민]]'''-[[최상덕]]의 '''4선발 체제'''라는 말도 안되는 선택을 했다가 선발진이 와르르 무너진 것. 5선발로 이동현을 투입했지만 소용이 없었다. 안타깝게 최상덕은 저 이후로 다시는 1군에서 활약하는 것을 볼 수 없게 된다. 더 심각한 문제는 [[불펜]] 난조로 이강철-조규제 듀오는 노쇠화와 부상으로 일찌감치 물러나고 신용운은 [[김종국(야구선수)|한남자]]의 실수가 트라우마가 되어 클로져를 못하게 돼버리는 총체적 난국이 도래했다는 거다. 상황이 이리되자 유남호 감독은 신인 투수 2명을 필승조로 삼았는데, 그 중에 한 명이 바로 [[윤석민(투수)|윤석민]]이었다.] 결국 시즌이 한창이던 7월 25일, 유남호 감독은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퇴, 남은 시즌은 [[서정환]]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아 2005년 시즌을 꾸려갔다. 이 와중에 '''[[다니엘 리오스]]'''를 두산에 넘겨주고 [[전병두]]를 받은 후 '''[[세스 그레이싱어]]'''를 새 용병으로 데려오기도 했다.[* 당시 리오스가 KIA에서의 마지막 선발 등판 후 포수 [[김상훈(1977)|김상훈]]과 포옹하는 장면이 감동적이었다. 그리고 그레이싱어는 2시즌간 나름 활약 후 [[NPB]]에 진출하여 꽤나 오랫동안 활약했다. 그 후 리오스를 일본으로 주선을 해줬다. '''[[도핑|그러나...]]'''] [[한화 이글스/2010년|팀은 개박살난 상황]]에 그나마 얻은 수확은 우익수 자리를 꿰찬 [[이용규]], 중간에서 노예질을 하던 [[윤석민(투수)]]이었다.[* 첫 해 부터 80이닝을 던지고 이듬해도 100이닝에 근접한 투구까지 했다. 그리고 후배 [[한기주]]와 쓴맛 단맛을 다 겪었다.] 그나마 이러한 팀 상황 속에서 간판타자 [[장성호]]는 3할을 기록하며 제 몫을 해줬고, FA 자격을 얻은 뒤 4년 총 42억에 친정팀 KIA와 계약하며 잔류하게 된다. 2006년 시즌엔 [[서정환]] 감독이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었고, 서정환 감독과 사이가 좋지 않은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골칫거리였던 [[마해영]][* FA 계약을 했을 때만 해도 최소 25홈런 정도는 쳐 줄거라는 믿음으로 데려왔으나 계약 첫 해부터 타율은 0.270대에 홈런은 10개를 겨우 넘기며 노쇠화가 진행 중이었고 팀의 필요한 로스터 자리 까지 차지하고 있었으니 골칫거리 그 자체였다. 더군다나 2005년 후반기부터 감독대행을 맡은 서정환과 사이가 좋지 않기도 했다.]을 [[LG 트윈스]]로 보내는 데 성공했으며[* 사실상 양 팀 전부 폐품 처리 트레이드라고 봐도 무방한 트레이드였다. 마해영과 최상덕은 2006년 시즌 후 전력 외가 되었으며, 그 때 낑겨간 유망주 [[서동욱]]은 백업으로 활동하다 2013년 [[최경철]]을 상대로 [[넥센 히어로즈]]로 트레이드되었다가 2016년 11년만에 다시 친정 팀으로 돌아왔다. KIA로 넘어온 [[장문석]]은 2006년 시즌 초반 마무리를 맡았으나 똥줄 세이브를 계속 보여주며 중반 이후 윤석민에게 마무리 자리를 넘겨주고 방황하던 김진우에게 노장진을 소개시켜주며 김진우가 팀을 이탈하는데 엄청난 공헌을 했다.[* 그런데, 김진우와 노장진은 두 번 만난게 전부이고 상대적으로 인연이 없어 인사만 했던게 끝. 그러니깐, 누군가의 루머로 김진우가 폭망했다는 개소리를 하고 다녔다. 결국, 뜬금없는 노장진도 피해를 봤으니...] 장문석과 함께 KIA로 넘어온 한규식, 손상정 역시 별 활약 없이 조용히 팀을 떠났다.] 10억 신인 [[한기주]]가 입단하는 등 나름대로의 기대를 품게 했다. 상대적으로 약한 공격력[* 2020년과 비슷하게 극단적인 상하위타선이 분리된 공격을 하였다. [[이용규]]-[[김원섭]]-[[장성호]]-[[이재주]]가 버틴 상위타선은 2006년 시즌의 미친 투고타저를 감안할 때 리그 최상급 상위타선이었다. 그리고 그 이후로는 5번을 맡아주거나 이재주를 밀어내고 4번을 차지했어야 할 용병이 전부 망했고, [[이종범]]과 [[심재학]]은 노쇠화의 기미를 보였다. 그나마 [[손지환]]과 [[이현곤]]은 포지션 및 타순 대비 감내할 만한 수준의 성적을 냈다.] 을 투수력[* 10억 신인 [[한기주]]가 데뷔 초부터 선발로 투입됐다가 후반기에 불펜으로 보직을 바꿔 전천후로 나왔고, 2년차 [[윤석민(투수)|윤석민]]은 마무리로 19세이브를 올렸다. [[이상화(1980)|이상화]] 역시 전천후로 투입되어 좋은 성적을 냈고, [[김진우(1983)|김진우]] 역시 어깨부상이 있었으나 선발 로테이션을 꾸준히 돌며 이닝도 먹어줬다. 시즌 후반이던 8월 말에는 재활 중이던 [[신용운]]까지 예정보다 빨리 가세하며 투수왕국 못지 않았을 정도였다.][* 2006년 시즌 KIA의 젊은 투수진이 커리어가 폭발한 결과로, 그레이싱어와 장문석을 제외하면 30살이 넘는 투수를 찾기 힘들 정도로 투수진 연령이 상당히 젊었다. 그리고 그렇게 KIA의 미래를 짊어져야 할 대들보들은 바로 다음 해에 감독의 혹사 및 무분별한 기용이 겹쳐 윤석민 정도를 제외한 대다수가 박살이 난다.]으로 상쇄하며 시즌 내내 4, 5위를 왔다갔다 하다가 시즌 막판 [[두산 베어스]]와의 3연전을 모두 승리하면서 4강행 막차에 탑승했다. 하지만 준플레이오프에서 [[한화 이글스]]에 1승 2패로 패하며 탈락하였다.[* [[한기주]]의 10억 보크 사건이 바로 이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나왔다.] 2007년 시즌에는 시즌 도중 메이저리그에서 [[최희섭]]이 돌아왔으나[* 여담으로, 홈 복귀전이 [[KIA 타이거즈/2007년/5월/22일|이 경기]]다. 9:10으로 KIA 승리.], 투수진의 줄부상과 공격력 약화로 인한 악순환이 반복되었고 서정환 감독의 '''서머리그 우승'''이라는 무의미한 목표를 향한 선수 혹사 및 부상이 겹쳐, 최하위의 원인이 되었다. 간판타자였던 [[장성호]] 역시 무릎 부상을 안고 무리하게 출장하다가 3할 커리어가 끊겼고, [[신용운]] 역시 전년도에 무리하게 당겨쓴 여파 및 갑작스런 선발 전환으로 인해 완전히 무너져버리며[* 신용운은 2005년 시즌 막판 토미 존 서저리를 받고 재활 중이었는데 2006년 8월 당시 감독이던 서정환이 4강 들겠다고 재활이 다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급하게 당겨쓴 것도 모자라 한 달 반정도 되는 기간 동안 40이닝 가량을 굴리며 무리시켰다. 결국 신용운은 얼마 못 가 다시 팔에 탈이 났고, 다시는 전성기의 구위를 회복하지 못하게 된다.] 군 입대를 하는 등 경기 외적인 악재도 수더분하였으며, 이 당시 성난 팬들은 단장인 정재공의 퇴진을 요구하는 현수막을 걸었다가 정재공 단장이 보낸 용역에 의해 강제로 철거당하기도 했다. '''급기야 [[LG 트윈스/2011년|훗날 LG 프런트들이 쌍둥이마당을 닫아버린 것처럼 호사방을 폐쇄해버리는 희대의 병크를 저지르고 말았다.]]''' 2004년 이후 롯데가 4연꼴 사슬을 끊자마자 2년 간격으로 LG와 꼴찌를 나눠먹기 했는데, 결국 이로 인하여 야갤과 디씨. 엠팍에서는 '''[[엘롯기]]'''라는 고유명사가 생겼다.[* 일단, KBO 내에서 팀 성적의 따라 이 팀들의 지분표로 인해 [[관중]]들이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것을 알 수 있다.] 그야말로 한국프로야구 최다 우승팀으로서는 씻기 힘든 불명예. 결국 [[정재공]]은 2007년 시즌을 끝으로 경질당했고, 후임으로 김조호가 취임하게 되었다. 시즌 후 [[서정환]] 감독 역시 최하위의 책임을 지고 사임하였다. 이 시기의 성적은 '''848'''. 가을야구를 했던(2004년, 2006년 시즌) 이듬해에 최하위를 찍은 양상이 반복되었다. 정말로 저 3년의 시즌동안 기아의 야구하면 [[이종범]], [[김종국(야구선수)]], [[이용규]], [[이재주]], [[장성호]], [[김상훈(1977)|김상훈]], [[윤석민(투수)]], [[신용운]], [[한기주]] 이렇게 된다. * [[KIA 타이거즈/2007년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